▶ 임차인보호규정
임차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임차권을 공시하여 권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렇듯 공시방법이 다양한 이유는 임차인은 사회적 약자이므로 특별히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차권은 권리분석을 할 때 입찰자에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은 부분이다. 임차인의 권리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민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어떤 과정을 겪으며 공시방법을 만들어냈는지 그 역사를 짚어보자
민법규정에 의해 임차인을 보호-민법은 채권계약의 14개전형 중 하나로 임대차를 규정하는데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 임차인에게는 당연히 임차권이 발생한다. 이때 임차권은 채권이고 채권은 특정인(임대인)에게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부동산물권의 변동으로 권리를 취득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임차인에게 대항력을 인정한다면 그 주택에 임대차가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제3자는 예상못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니 문제는 공시여부가 된다. 임차권을 공시하여 세상에 알릴 수만 있다면 임차인에게 대항력을 인정하더라도 예상못한 피해를 보는 제3자는 발생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채권인 임차권을 공시할 수 있는 임차권등기에 관한 규정과 물권으로 공시할 수 있는 전세권에 관한 규정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민법에서 규정해 놓은 것이다, 임차권을 등기하면 채권으로서의 임차권으로, 전세권을 등기하면 물권으로서의 전세권으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탄생-임차권과 전세권을 등기하여 공시함으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민법규정은 예전부터 있었는데 문제는 임대인의 동의를 요한다는 사실이었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인에게 등기절차에 협력해 달라고 하면 다른 집을 알아보라는 답이 돌아오기 일쑤였다. 결국 임대인이 등기절차에 대한 협력을 거부하면 임차인은 임차권 등기나 전세권등기를 할 수 없었다. 전셋집을 구하기 어려운 시기에는 임차인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주택을 임차해야 했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인의 동의없이도 임차권을 공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길을 열어준 것이 바로 주택임대차보호법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주택을 인도받고 주민등록을 마치면 임차권이 공시된 것으로 보고 대항력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임대인의 동의없어도 민법규정에 의해 임차권등기를 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임차인의 권리를 한층 강화시켜 주고도 임차인에게 더욱 특별한 무기를 선물했다. 물권의 전유물이었던 우선변제권을 채권인 임차권에도 인정해 준 것이다. 이렇듯 영세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의에 따라 소액임차인에게는 최우선변제권도 인정해 주었다.
공시방법의 한계-그런데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임차권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규정에 의한 공시방법(전입과 점유)은 실질적이고도 물리적인 방법이다. 주택을 물리적으로 점유하고 있어야 하고 다른 주택으로 주민등록을 이전해서도 안된다. 임차인이 갑주택에 임차권등기를 했다고 해서 을주택에 임차권등기를 또 할 수 없을까? 할 수 있다. 전세권자가 갑주택에 전세권등기를 했다고 해서 을주택에 또 전세권등기를 할 수 없을까? 할 수 있다. 임차인이 갑주택에 주민등록을 두었다고 해서을 주택에 또 주민등록을 둘 수 없을 까? 주민등록을 동시에 두 주택에 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정이 임대차기간에는 급소로 작용하지 않지만 임대차가 만기되었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라면 임차인에게 치명적인 급소가 될 것이다.
임차권등기나 전세권등기로 권리를 공시한 임차인이라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이주할 수 있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규정에 의해 실질적이고도 물리적인 방법으로 권리를 공시해 온 임차인은 이주할 수 없다. 이주와 동시에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공시방법(대항요건)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건(주택)을 실질적으로 점유하지 않고도 공시할 수 있다는 등기의 장점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결국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등기의 원칙마저 깨버렸다. 물론 임대차기간이 끝나고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경우로 제한하고 있기는 하지만 임차권등기를 법원의 명령을 통해 임차인 단독으로 신청할 수 있게끔 길을 열어주었다.
민법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보완-주택임대차보호법의 임차권등기명령규정에 의해 임차권이 등기되어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공시방법인 대항요건을 잃어도 임차인이 기존에 취득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그대로 유지된다. 만약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임차권등기를 접수한 날 취득하게 된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민법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와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한다. 민법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는 원래 임차권을 채권으로서 공시하는 효력이 있었을 뿐 우선변제권을 발생시키거나 유지시켜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위해 민법에 의한 임차권등기의 효력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의한 임차권등기의 효력과 같게끔 보완했다. 재미있는 것은 민법규정이 개정된 것이 아니라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민법에 따른 주택임대차등기의 효력에 관하여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주택임대차등기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는 취지를 추가함으로써 민법의 임차권등기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민법규정에 의한 임차권등기는 실익이 전혀 없는 규정이 되어버렸다. 민법규정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이전에 임차인이 채권으로서 임차권을 공시할 수 있도록 해주었지만, 주택임대차보호법 덕분에 임차인은 더 손쉬운 방법으로 더 강력한 권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민법의 임차권등기는 실생활에서는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